한 경제학자가 어느날 한 벌뿐인 허름한 옷을 입고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강연장에 들어서는데 옷차림만 보고 직원이 그분을 막아섭니다. "입장료를 내지 않으면 못 들어갑니다." 그러자 그 경제학자는 자신이 강연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조용히 입장료를 내고 들어갑니다.
자신이 강연자라는 말 한마디면 되는데, 너무 융통성이 없는 건 아닌가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정 반대의 경우를 더 많이 보지요.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입장료만 면제 받는게 아니라, 당당하게 무료 입장권이 더 없는지 알아봅니다. 얼핏 속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다 삶의 특정한 내력이 있고, 사연이 있을 겁니다. 때로 그 수완과 열정이 대단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 수완 없어 보이는 경제학자의 이름은 스캇 니어링입니다. 많이 들어보셨을거에요. "덜 소유하고, 더 많이 존재하라". 여기 가까운 버몬트와 메인에서 땅을 일구며 소박한 삶을 살았던 미국의 자연주의자입니다. 스캇 니어링과 아내 헬렌 니어링이 훗날 메인으로 이사를 하고 농장을 만들었는데, 이름이 <굿 라이프 센터>입니다. 이 센터를 관리하시는 분 말씀에 따르면 미국인 다음으로 많이 찾아오시는 분들이 한국인이라고 그래요. 역시 공동체 하면 한국이지요. 보통 한국분들, 빨리 빨리 좋아하고 효율적이고 이해타산이 빠른 사람들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일제, 한국 전쟁 IMF 같은 역사적인 세파들을 헤쳐오면서 이제는 부지런함과 열정을 넘어 대안적인 공동체에 대한 꿈도 많이 꾸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생일에 “당신이 100년동안 살아줘서, 세상이 조금 나아졌습니다"는 문구를 선물받은 스캇 니어링의 인생을 바라보며 문득 소유와 존재라는 삶의 가치를 되돌아봅니다. 로드아일랜드 지역의 UCC 목사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메일은 받았지만, 아직 모임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하여 저는 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캇 목사가 해맑게 웃으며 같이 가자고 권합니다. 선뜻 함께 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제 속 마음은 달랐나 봅니다.
13명의 목회자들이 모여서 담소를 나눴습니다. 새로 부임한 목회자도 있었고, 은퇴를 결정한 목회자도 있었습니다. UCC 목회자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제 면접을 봤던 목회자는 우리 가족들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시 연결된다는 것은 언제나 훈훈한 감정입니다. 관심사는 언제나 교회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돌아오지 않는 교인들로 걱정입니다. 이럴 땐, 같이 걱정해 주어야지, 우리는 다 왔다고 자랑하면 안됩니다. 마음 한 편으로는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용기 내어 예배의 자리로 나오신 교우 여러분께 고마웠습니다. 걱정 가운데 더 심각한 걱정은 아이들입니다. 적지 않은 아이들의 신앙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신이 무력하게 느껴질 때, 신의 저주가 내린다고 생각될 때 늘 교회는 회의적인 물음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전염병이나 자연재해, 전쟁때면 늘 겪는 일입니다. 한 둘씩 입을 떼어 대책을 나누지만, 전처럼 최고의 모범 사례를 들며 재정과 인력을 투여해 해결할 수 있다거나 비전을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는 뻔한 얘기는 누구도 하지 않습니다. 무척 고무적이었습니다. 희망이 보였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각의 변동이 있었고, 일부는 전처럼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20세기 방식에서 벗어납니다. 이렇게 포스트코로나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잠잠히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봅시다. 그리고 우리 이웃교회들과 회중들,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서 마음을 모아보면 좋겠습니다. | 연중주일 신앙교육 |
공동체 성서읽기를 위한 열왕기서 따라잡기 이스라엘 역사는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야기식이어서 소설책 읽듯이 금새 읽어지는 재미있는 책입니다. 원래 사무엘서의 이름은 왕국 1,2서였고, 열왕기서의 이름은 왕국 3,4서였습니다. 두 책은 별개가 아니라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다만 겹치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또 역사서지만 객관적인 역사 기록은 역대기에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열왕기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요? 바로 이스라엘 역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엘리사와 같은 선지자들을 통해 당신의 뜻을 드러내십니다. 엄밀히 말하면 대화식 역사서라고 할 수 있겠네요. 비록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멀어짐에 따른 분열과 쇠락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지만, 반대로 영광을 되찾을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책입니다. 로마시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특성은 의외성이었습니다. 로마의 세계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자선과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렇습니다. 지금 그 방법이 통하는가? 다시 질문하면 이렇습니다. 지금 그 방법을 썼을 때, 세상이 깜짝 놀라는가? 다시 말해 <의외성이 있는 사역인가>…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서 의외성 있는 사역을 할라치면 이미 누군가 다 해본 사역인 경우가 많지요.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고, 상처를 싸매주는 것은 반드시 해야 되는 일이지만, 4세기 사람들은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깜짝 놀랬고, 21세기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데 차이가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쯤 완도 김, 미역 공동구매하는 신나는 협동조합을 좀 확장시켜야겠다는 비전이 생겼습니다. 발기인대회를 열고 기금을 마련해서 이민자 보호교회를 지원했습니다. 그 일을 열심히 하고 나니까 자연스럽게 시카고 라디오와 뉴욕 티비, 그리고 몇몇 신문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옵니다. 세상이 궁금해 하는거에요. 왜 이 일을 하게 됐느냐? 무엇이 원인이었냐? 어려운 사람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이제는 사회복지단체가 너무 잘하고 있고, 정부도 가면 갈수록 일을 잘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큰 교회들은 알아서 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자원이 넉넉치 않은 교회들은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이것이 오늘 우리의 질문이지요. 이렇게 우리 눈 앞의 방법적인 질문에서 시작해서 다시 근원적인 질문으로 깊이 들어가 봅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의외의 선택을 했을 때 과연 그 힘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 힘의 근원인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나. 앞으로 6주간 에베소서를 함께 나누며 찾아보겠습니다. | 연중주일 신앙교육 |
공동체 성서읽기를 위한 욥기 따라잡기 10월 교회력에 맞추어 욥기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지혜서의 신진 학자이자 함께 공부했던 송민원 박사의 “지혜란 무엇인가"를 읽고 있습니다. 평소 이렇게 미리 준비하진 않지만, 욥기의 분량이 많고, 신학이 까다로운 관계로 학생처럼 틈틈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함께 공부하시면 좋겠습니다. 마침 돌아오는 주간에 욥기를 통독합니다. 통독과 정독, 설교를 위한 읽기는 다르지만 미리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잘됐습니다. 송박사는 잠언과 욥기, 그리고 전도서 이 순서로 읽어야 된다고 강조합니다. 잠언은 초 중 고등학교와 같은 입문단계로 규범을 배우는 지혜서라면, 욥기는 배운것이 사회에서는 예외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지혜를 말한다고 합니다. 전도서는 인생을 훗날 돌아보니 그 예외까지도 하나의 거대한 규칙의 일부였더라는 깨달음의 지혜를 말한답니다. 무릎이 쳐집니다. “하나님 저에게 왜 이러십니까?”의 욥기 단계의 사람들에게 잠언의 규칙성에 따라 “주일성수, 십일조 안해서 그래"라고 한다면 어리석은 조언이겠지요. 이 어리석음은 아파하는 이에게 비수가 될지도 모르니, 이번 기회에 함께 읽어보시고 지혜를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1월 초에 시작했던 200일 공동체 성서읽기가 어느새 50일 남았습니다. 남은 기간동안 매일 같은 기도문으로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아침기도를 마치고, 주보에 나와있는 중보 기도와 성서읽기를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교우들과 나누고 싶은 중보기도제목을 업데이트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말씀과 기도의 동역자, 모든 교우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아침기도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오늘도 경이로운 아침을 열며 생명을 누리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도와주시어 진리가 가슴에 새겨지게 하소서. 주님과 동행할 때 기쁨의 노래로 오늘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저녁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를 향하신 크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모든 일을 멈추고 깊은 호흡을 하며 주님 앞에 마음을 모읍니다. 이 밤, 주님 품에 품어주시고 영육이 소생하는 쉼을 허락하소서.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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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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