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어둠에 묻혀 있는 저에게
등불이 되어주소서. 제 영혼을 어루만지시고 그 안에 불을 붙이시어 그것으로 하여금 밝게 피어올라 제 인생을 비추게 하소서. 제 몸을 당신 성전으로 삼으시고 당신의 영원한 불꽃이 제 심장 제단에서 타오르게 하소서. 나아가, 제 속의 빛이 밖으로 형제자매들에게 비추어 저들의 무지와 죄의 어둠까지 몰아내게 하소서. 그래서 우리 함께 세상의 빛 되어 당신 복음의 밝은 아름다움을 온 누리에 증명하게 하소서. 우리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 콜룸바누스의 기도 Columbanus, 543-615) *아일랜드 출신의 가장 위대한 수도사. 그리스도의 나그네를 자처한 그는 한 군데 정주하지 않았다. 보비오, 밀라노, 제노바 등지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들 수도원들은 그 당시에 학문과 문화 그리고 영성의 중심지로서 큰 기여를 하였다. 자신의 수도회 규칙, 강론집, 시 그리고 아리우스(Arius) 이단 반박문 등 수많은 글을 남겼다. 안일함에 빠져 세상의 많은 이들의 가난 문제를 못 본척하고, 기후위기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이 때, 방종과 게으름의 시대라 할 수 있는 오늘날, 신앙의 엄격함과 규율로 상징되는 그는 교회의 감동적인 기억을 되살리는 인물이다. 주님, 우리의 눈을 들어
예수를 바라보게 하소서. 주를 만났던 곳에 안주하지 않게 하시고, 당신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향하게 하소서. 주님, 우리의 귀를 열어 예수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우리 육신의 귀로 듣고 순종케 하시고 더 나아가 내면의 귀, 영적인 귀로 듣게 하소서. 주님, 우리의 마음을 열어 예수의 연민과 동화되게 하소서. 물질적인 가난을 넘어 결핍에 시달리는 존재들, 몸의 억류를 넘어 유혹과 중독에 끌려가는 존재들, 눈의 답답함을 넘어 지혜와 영의 눈이 가리운 존재들, 억눌린지도 모른 채, 보이지 않는 사슬에 억눌린 존재들 바로 우리들이며, 우리 이웃들이오니, 우리로 예수께서 선포하신 은총의 해를 맞이하게 하소서.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시고, 유일한 구원자 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여,
우리는 확실하고 익숙한 것에 너무 오래 안주해 왔습니다. 변화의 값비싼 댓가를 치루지 않아도 되기에 자신을 열지 않아도 되기에 고착되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여, 이제는 우리로 안주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알 수 없고, 감지할 수 없는 깊은 존재를 음미하며 받아들이게 하소서. 주여, 비오니 우리로 순종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께서 때에 순종하여 처음 표적을 보이신 것 처럼 마리아가 운명에 순종하여 아들에게 새 길을 열어준 것 처럼 하인들이 요청에 순종하여 말없이 물 길어온 것 처럼 물이 말씀에 순종하여 포도주로 변화된 것 처럼 우리로 당신의 마음에 홀린듯이 어우러지게 하소서. 굽힘 없이 당신을 신뢰함으로 하늘 뜻을 수용하게 하소서. 말씀으로 우리 인생을 변화시키시고 십자가 보혈로 우리 인생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Q. 하느님은 틀린 표현인가요?
A. <하나님> 표기는 실제 사용하는 발음을 받아들인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자장면이 표준어지만, 짜장면으로 발음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둘 다 용인된 사례입니다. 우리 나라에 한글 성경이 번역되어 들어온 것은 로스라는 선교사가 중국성경을 번역하여 만든 로스성경이 최초입니다. 중국어에 능통한 평안도 보부상에게 부탁을 하여 번역을 하게 됐는데, 자연히 당시 평안도 사투리의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각 나라의 성경에는 God이 하늘님으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중국어로는 상제(위에 계신 주군)이므로, 하늘님, 천주님이 상당히 유사한 번역입니다. 평안도에서는 Heaven을 의미하는 하늘을 하 ㄴ + (아래아)+ ㄹ 로 쓰면서 읽을때 나는 소리가 <하날님>이 되었습니다. 결국 하날님에서 분화된 하나님을 성경 번역 용어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가톨릭은 천주님, 개신교는 하나님으로 쓰다가 표준어로 사용되는 하느님(하늘에 계신 주님)으로 1970년대 말 공동번역성서를 내면서 합의를 봤어요. 개신교 번역자들(문익환, 곽노순) 입장에서는 천주님에서 하느님으로 양보한 게 더 크다고 봤지만, 개신교회들이 대체로 공동번역성서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합의의 정신이 무색해졌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어 표준어는 <하느님>, 기장교단과 성공회, 복음교회, 일부 연합정신이 강한 교단들을 제외한 개신교 다수교단에서는 <하나님>을 번역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적 표현과 이미지가 풍성하게 도드라지는 공동번역을 수십 해 사용해 왔고, 작년부터 다시 공동번역을 예배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 통독에는 개역개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번역은 번역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표현에서 유연하고 자유롭되, 한 가지만 유의합시다. “<하느님>은 틀렸다”라고 말하는 것은 표준어를 모르거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셈입니다. 사랑하는 제일교회 성도 여러분, 202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 한해, 풍성한 하느님의 은총이 여러분의 건강과 가정 그리고 일터 위에 가득하시길 축원합니다.
햇수로 3년째 접어드는 코로나에도 나무들은 어김없이 낙엽이 지고, 다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물이 없거나, 너무 춥거나 해서 각종 결핍에 시달린 해의 나이테는 촘촘하고 단단해서 목수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하지요? 오늘을 견뎌내는 우리 모두는 알게 모르게 어딘가 단단해지고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소양을 갖추고 있는 셈 치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우리 교회가 어느 정도는 단단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말씀이 생활화 되었습니다. 공동체 성서읽기를 통해 우리끼리만이 아니라 이웃들에게도 터전을 제공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또 선교적 측면에서는 서류미비자 싱글맘을 돕는 가장 단단한 교회 중 하나로 세워졌습니다. 온라인 예배를 통해서도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습니다. 영성을 추구하나 교회생활을 여러가지 이유로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공간을 마련할 수 있어서 고마운 일입니다. 무엇보다,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끈끈하게 챙기는 모습이 짙어졌습니다. 목수 출신 예수님이 참 좋아하게 생긴 나무로 자라고 있습니다. 조금씩 기도의 제목들을 나누는데 익숙해 지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할 수 있으면 친교에 앞장서고, 헌신할 것이 없는지 자발적으로 찾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천국백성으로 떠나보내는 마음도, 새로온 성도를 환대하는 마음도 참 따뜻합니다. 부끄럽고 서먹했던 시절이 엇그제 같은데,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목사에게 선뜻 전화해 주시고, 저와 가족들의 건강을 묻는 교우님들 사랑도 경험했습니다. 이 모든 성숙과 전진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을 줄로 믿습니다. 지나고 보면 참 아름다웠던 시절로 기억 될 것입니다.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사랑합니다. |
아카이브
3월 2023
카테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