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대면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은 모두 한결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섬세하게 보면 각자 사정이 있습니다. 우선 연로하신 분들과 고혈압 당뇨 등 기저질환이 있는 분들은 교회에 오고 싶어도 잘 판단하셔야 됩니다. 또한 아이들이 있는 가정은 당분간 온라인 예배를 지속하기를 범교회적으로 합의하고 있습니다. 이 기준에 맞추어 봤을 때, 우리 교회는 조금 더 기다리는게 좋겠다는 판단이 우선시되고 있습니다.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코로나 시국에 교회들이 대처를 잘 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우리 교회는 협조를 잘해주셔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진 않았습니다만, 중남부의 몇몇 교회들은 예배를 다시 중단하고, 참석자들은 검사를 받은 후 집에 격리되었습니다. 세상에 복음을 전파해야 할 교회가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통로가 되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그러나 언제든 상황이 호전될 수 있습니다. 백신 개발도 잘 되고 있다고 합니다. 위험해지고 있는 지역이 절반이지만, 일찌기 위험했던 동북부는 차츰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어서 희망이 보입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발열 체크, 마스크 착용 등 수칙을 잘 지키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예배드릴 수 있는 날이 곧 올 겁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다음과 같이 마음의 준비를 해 봅니다. 예배가 재개된다고 가정했을 때 우선순위입니다. 첫째, 코로나 19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먼저 추모합니다. 이와 동시에, 이 기간에 가족들 품을 떠난 이들, 그동안 지병으로 고통받다가 아무도 모르게 쓸쓸히 장례를 치룬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서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예배를 드릴때의 기쁨은 안봐도 뻔합니다. 친구 목회자의 교회에서 드린 자동차 예배(Drive-In)를 봤더니, 서로 차 안에서만 얼굴을 봐도 서로 기뻐서 어쩔 줄 모릅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사랑했나봅니다. 감추고 싶어도 드러나는 기쁨은 마치 결혼식날 신랑신부의 화색같이 스쳐 지나가도 느껴지는 것이겠지만, 이 기쁨이 살아남은자들만의 것이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둘째 Reopen은 Recover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빵집이나 식당, 철물점이나 옷가게 등 비필수 비즈니스는 몇 가지 안전수칙에 따른 설비를 갖추면 오픈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겁니다. 교회는 어저께나 오늘이나 어느때든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소입니다. 이와 동시에 그동안 침울하고, 지루하고, 힘들었던 우리 마음을 서로 보살피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서로에게 더 신경써서 친절을 베풀고, 마음을 갓난아이처럼 조심스럽게 잘 다루면서 자연히 회복되도록 공동체가 합심하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 저는 지난 주부터 온라인을 통해 총 4주에 걸쳐 진행되는 목회자 세미나를 듣고 있습니다. 비대면 시대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기존에 목회자 세미나를 가려면 시간과 비용을 많이 들여야 했고, 또 그렇게 가더라도 한 두 명의 강사의 강의를 듣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사정이 다릅니다. 세미나 이름부터 Global 목회자 세미나입니다. 국제적으로 강사들을 섭외하고,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민교회 목회자들까지 초대해 같은 시간에 강의를 듣습니다.
1.사실 기업들은 포스트코로나에 대한 준비가 어느정도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정글같은 자본의 세계에서 빠르게 살아남으 려면 리스크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미리 자문을 받고, 방법을 마련해 놓았다고 합니다. 반면 학교와 교회는 뒤쳐졌습니다. 2.그렇지만 교회들은 아직도 포스트코로나는 커녕, 코로나 이전의 영광을 되찾는데 에너지를 쏟고 있습니다. 실례로 한국의 5만명, 10만명 대형교회들은 자가격리 기간에 불과 몇 천명만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사태가 벌어져 비상이 걸렸습니다. 그 많던 예배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거꾸로 비교적 작지만 정직하게 말씀을 연구하고, 세상의 빛이 되는 섬김을 모토로 하는 교회들의 온라인 예배는 많은 참여를 이루어 내면서 기독교계 변화의 새로운 신호탄이 되고 있습니다. 3.어떤 작은 이민교회는 서로 연합하여 정성껏 예배를 드린 사례도 있었습니다. 한 교회의 목사님은 카메라를 가지고 있지만 찍어줄 사람이 없었고, 다른 교회에는 찍어줄 사람은 있는데, 카메라가 없었습니다. 둘 다 스무 명 안팎의 교회였지만, 서로 연합하여 어린이 설교와 장년 설교를 매주 번갈아가며서 예배드렸습니다. 더 나아가 지역의 일용직 노동자들을 섬기는 사역까지 연대했다고 합니다. 4.미국에서 온라인으로만 모이는 교회의 설립자와 현 스탭의 강의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존의 건물에서 모이는 형태의 교회들이 감당해 낼 수 없는 신앙인들이 그렇게 많았다는 것도 놀라운 정보였습니다. 수십년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가다듬어진 복음전파의 방식과 소그룹 관리 프로그램을 코로나 이후의 변화된 지형을 고민하는 일반 교회들에게 무상으로 공개하기로 했다는 감사한 결정이 있었습니다. 바야흐로 변화의 시대입니다. 아니 이미 변화는 되고 있었지만, 이제야 모두 함께 전환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십 수년전 성경 찬송이 바뀔 때가 생각납니다. 평생 암송했던 성경구절과 찬송가 번호를 다시 외워야 했습니다. 목회자로써 적잖이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번 변화는 더 상상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층적으로 보고, 다양한 행동양식을 가져야 하는 현실 앞에서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인종차별 할 수 밖에 없다" vs "인종차별 하면 나쁜놈" 이런 구도만으로는 아쉽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무도 보면서 숲을 보는 Multi-Point of view를 갖추는게 어렵지 않은 세대입니다. 거대담론 만으로, 미시적 접근만으로 담론을 형성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월의 결이 달랐던 세대간의 갈등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심지어 사회 개혁의 기수였던 386세대나, 지금의 40대들이 한인 자녀들과의 고충을 온라인에 털어놓습니다. 부모세대의 정의와 자녀 세대의 Justice가 색이 다릅니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참여하는 자녀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적 위치에 벌써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6-70대 부모님을 설득하는 문제는 오죽 복잡할까요? 세계관이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아래 MSNBC 기사를 보면, 아무리 망해가는 미국이라지만, 담론을 형성하고 끌어나가는 동력은 여전히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 하나 "죽이기"나 "영웅만들기"에 골몰하며 시청율이나 끌어 올리려는 어느나라 일부 언론들과 다른 부분이 좀 있습니다. 거대담론을 얘기하면서 쪽집게처럼 미시적인 접근도 같이 시도합니다. 오늘날 세계는 3D 안경 없이 바라봐야 하는 다차원의 스크린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How to talk to your Asian immigrant parents about racism, June 11, 2020, 6:00 AM EDT By Sakshi Venkatraman, 흑인들을 욕하는 부모님들이나 지인들과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 1. 겸손하라. 그리고 자신을 먼저 교육하라. 2. 누군가의 세계관을 바꾸는 일 임을 명심하자. 3. 부모세대가 본국에서 경험했던 억압과 차별에 대해 묻고 경청하라. 4. '모범적 소수인종'의 허구성에 대해 설명하라. 5. 본인의 개인적 경험과 공감 이유를 이야기 하라. 6. 한번의 대화로는 안된다. 지속적인 정보공유와 대화가 필요하다. 7. 자신의 감정을 잘 추스르고 한계를 자각하라. 기사의 내용은 이렇지만, 정작 실행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자녀와의 대화를 통한 변화도 쉽지 않습니다. 사실은 내가 스스로 묻고,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인생 전체를 신앙적, 철학적 여정으로 삼아야 하는 일이기에, 위에서 말한 7가지 제안은 자녀가 아닌 내가 나 스스로에게 적용해 볼만한 가치있는 문항입니다. 물론 부모가 먼저 자녀들에게 열린마음으로 이야기를 건넨다면 가장 아름다운 결과일 것입니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보며 여러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누군가가 벌여놓은 링 안에서 아귀다툼하는 꼴입니다. 단순히 흑과 백의 싸움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법과 질서의 문제로 환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게다가 의심스러운 백인들의 선동과 이에 편승한 좀도둑까지 들끓기 시작하면서 싸움은 두 번째 라운드, 약탈로 번졌습니다. "그동안 흑인들이 당한게 얼만데?"라며 옹호하는 편과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안된다"라며 질시하는 편으로 나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던 말콤엑스와 평화를 추구하던 마틴루터킹이 떠오릅니다. 잠시 멈추었으면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지금은 애도해야 할 때입니다. 숨진 조지 플로이드를 위해 애도합시다. 목숨처럼 돌보던 사업장을 잃은 이들을 위해 애도합시다. 시위로 목숨을 잃은 평범한 이웃들을 위해 애도합시다. 모든 경찰이 살인자가 아님을 기억하며, 그들을 위해 애도합시다. 모든 시위대가 약탈자가 아님을 기억하며, 그들을 위해 애도합시다. 애도에는 마침표가 없습니다. 우는 자가 있으면 함께 우는 게 성서의 가르침입니다.(롬12:15) 사회적 약자와 연대해야 합니다. 구조적이고 국가적인 인종차별의 바이러스를 제거해야 합니다. 오늘 함께 손을 맞잡지 않으면, 내일도 누군가 우리의 소수인종 형제가 희생될 것입니다. 애도와 동시에 행동합시다. 각자 자신의 신앙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을 합시다. 특별히 중요한 행동은 기도입니다.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제나라 시민들의 세금으로 구입한 총을 시민들에게 향해야 하는 아픔을 뒤로하고 막아선 군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특별히 모여 있는 곳에서 전파력이 강한 COVID19 으로 인해 두번째 팬데믹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무엇보다 폭력과 약탈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우리 사회에 폭력배와 좀도둑은 어디에나, 어느 인종에게나 있습니다. 이들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애도와 연대의 물결을 물거품 만들지 않도록 위해서 기도합시다. 한인들의 사업장을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 박장로님의 사업장을 지켜주시도록 마음모아 기도합시다. 그 어떤 정의도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부당한 취급을 당해온 이들이 더 약한 이들을 향해 더 부당한 취급을 해서는 안됩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시인 브레히트는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사실”이라고 통찰했습니다. 더 이상 누군가가 강제한 프레임 안에서의 싸움은 무의미합니다. 우리는 싸우지 않습니다. 더불어 애도하고, 손 잡으며, 행동할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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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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