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에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우리 어린 친구들의 훌륭한 성구 암송과 공연이 있었습니다. 매년 하일라이트는 아이들의 노래 율동이지만, 올해는 아이들과 더불어, 똘똘 뭉쳐 찬양한 온라인 성가대(Virtual Choir)도 주목받기 충분했습니다. 모두 참 잘했습니다.
준비하면서 당연히 쉽진 않았습니다. 가지치기의 연속이었습니다. 대곡을 하고 싶은 욕심을 잘라내고 단순하고 소박하게 찬양에 열중했습니다.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기우를 잘라내고 자족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여곡절이 마지막에 있었습니다. 12시간이나 걸려서 만들었는데, 분명히 화음은 잘 들리는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퍽 퍽 하는 소리가 중간에 들립니다. 듣는 입장에서 귀가 아프면 아무리 좋은 선율이라도 불편합니다. 그래서 씨름을 해봤습니다. 원인을 찾았습니다. 잘 안들리는 사람의 소리를 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사람을 키우면 또 다른 사람 소리가 안들려서 또 키우고, 그러다 보니, 엄청나게 큰 소리로 변한겁니다. 그래서 모두 처음으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거꾸로 접근해 봤습니다. 큰 사람의 소리를 작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제 목소리가 크더라고요) 플러스만 모였을 때 들어줄 수 없던 음악이, 조금씩 양보해서 마이너스로 조화를 이루자 고운 선율로 변했습니다. 교회도 어쩌면 이러한 합창의 원리가 적용될것 같습니다. 모두 배려하고 서로를 위해 내 자아를 깎 연습이 모여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세밑을 앞두고 귀한 깨달음으로 마무리 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기대가 됩니다. 모두 한 해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 다행입니다. 산타클로스가 코로나 면역력을 갖고 있어서 선물 배달이 가능하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자난 월요일 세계보건기구 (WHO)의 공식적인 '농담'이 발표되었습니다. 한편 어린이들은 산타와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교회에도 산타가 찾아왔습니다. 뉴저지의 한 독지가께서 소식도 없이 깜짝 선물을 교회로 보냈습니다. 우리 교우들에게 마스크가 필요할 것 같아서 보냈다고 합니다. Face-Shield도 함께 왔습니다. 세월은 수상하지만, 오늘 또 하나의 빛이 비칩니다.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산타가 되면 참 좋겠지요? 어떻게 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이미 물질적인 도움으로 이미 산타의 대열에 합류하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정성껏 캔에 들어있는 음식과 마른 음식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준비하셨는데, 사정상 픽업하지 못한 가정도 있습니다. 다 모아서 교회 앞 푸드뱅크에 전달할 계획입니다. 한편 정신적인 도움으로 산타의 대열에 합류하실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교우님들을 도와드리려고 심방하는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저에게 격려와 지지를 보내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에서 복된 소식이 나오는 신비 가운데 재앙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는 힘이 많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일주일동안, 세 분씩 정해서 축복과 격려를 전해주세요. 메아리의 법칙이 있습니다. 누군가 ‘사랑해‘ 라고 외치면 상대방도 ‘사랑해’ 외칩니다. 조금 쑥스러워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해 외치며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도 메아리쳐야지요. 한 명의 감염자가 2-3명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옮긴다고 하지요. 우리도 질 수 없습니다. 사랑의 바이러스로 씩씩하게 세상을 밝혀보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Merry Christmas!! 성탄절 전날 밤에 어느 농가의 부부가 있었습니다. 부인은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에 가고, 남편은 무신론자여서 집에 남아 편한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부인은 이런 날이라도 남편과 함께 가고 싶어했지만, 남편은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밤이 무르익고 눈이 조금씩 옵니다. 마침내 온 세상이 하얗게 덮였습니다. 바람이 점점 세게 불어오더니 매우 추운 밤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창문에 그림자가 나타나서 보니, 작은 새 두 마리가 눈보라에 밀려서 창에 부딪쳐서 부들부들 떨고 있습니다. 다른 새들도 나뭇가지에 피신해 덜덜 떨고 있습니다. 아무리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지만, 불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새들에 대한 연민은 더욱 커져 만 갔습니다. 그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부츠를 신고 밖에 나가서 자신의 창고에 새들을 피하게 해주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창고 문을 열고 다친 새들을 넣어주면, 다른 새들도 따라오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새들이 좋아하는 빵을 뿌려 창고로 유인하려 했습니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또 창고에서 빗자루를 가져와서 새들을 몰아 넣으려고 쫓아다녔지만 허사였습니다. 오히려 놀라 달아났습니다. 이제는 지쳐서 주저앉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만약 새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면, 내 속마음을 전할텐데…그래 내가 한 마리 새가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야” 마침 이 때 교회의 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남편은 눈 위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당신이 인간이 되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여러 번 손길을 내미셨고,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내어 우리와 같은 인간의 삶을 살게 하셨음을 짧은 우화로 전한 루이스 케셀스의 이야기로 여러분의 크리스마스가 더 따뜻하게 장식되길 바랍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마음이 얼마나 클까요? 새로 나온 아이폰을 기다렸던 마음, 블랙 프라이데이에 원하는 물건이 할인되길 바라는 마음보다 더 클까요? 당장 급한 백신을 소망하는 마음보다 대림의 마음이 더 간절할까요?
예전에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고, 유쾌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관행에 대한 도전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것은 물어보는게 아니라는 관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연한 것은 본질입니다. 그 유쾌한 칼럼으로 인해 진정 우리가 서로 묻고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어요. 크리스마스란 무엇인가? 2020년 미국에서 물어봤을 때, 크리스마스는 사실상 연휴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지난 십여 년간 Holiday냐 Christmas냐 논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한다고, ‘그들’의 마음에 그 긴박성과 기다림의 우선순위를 봤을 때, 싼타보다 Amazon 딜리버리 person을 더 손꼽아 기다릴 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또 물어볼까요? 우리가 말하는 그들은 그렇다면 누구입니까? 마음의 우선순위가 예수 그리스도에 있지 아니한 사람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요? 신자와 비신자로 구분이 될까요? 긴박성과 소망이라는 물과 기름같은 성질의 마음을 잘 달래가며, 주의 오심을 예비하는 대림절기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대림절 둘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은 그리스도의 처음 오심을 기뻐하고,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집에서 음악을 틀고, 촛불을 켜고 매일 10분간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간의 화두는 평화입니다. “이 촛불을 평화의 상징으로 밝힙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주신 이 말씀이 저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게 하옵소서. 곧 오소서, 임마누엘 예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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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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