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같은 아파트에서 빌딩만 바꿔서 이사를 했습니다. 14동에서 12동으로 주소를 바꾸고, 짐 정리까지 마쳤지만 아직 바뀌지 않은게 있었던 모양입니다. 바로 몸의 기억입니다.
웃음이 나는 일입니다. 무심코 예전 집 앞 늘 주차하던 자리에 차를 대고는 아내와 함께 웃습니다.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다행히 차에서 내릴라 치면 정신이 돌아옵니다. 그래도 몸의 기억을 정신이 이기기까지 며칠이 걸렸습니다. 김유신이 말 목을 칼로 쳤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다시금 빙그레 웃습니다. 귀족이었던 김유신처럼 아끼는 애마의 목을 칠 수는 없으니까요. 말의 재질도 물론 다릅니다. 괜시리 애꿎은 애마를 들먹거렸습니다. 자꾸 예전 집으로 향하는 기억이 사실 심각하거나, 당황스러운 습관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차가 알아서 그리로 간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기에 발생하는, 웃어 넘길만한 해프닝입니다. 그러나 몸의 기억은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예비군을 가더라도 평생 같은 자세로 총을 쏠 수 있습니다. 운동 선수는 평생 그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하루만 쉬어도 큰일 나기도 하고요. 영성학자들은 몸의 기억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책을 읽고, 기도함으로 영성이 쌓이는게 아닌 모양입니다. 반복의 힘은 영성을 쌓는데 종요한 요소입니다. 수도사들을 상상해 보면 어떻습니까? 수 년 전에 베네딕토 수도원에 일주일 머물면서 지켜본 그들은 매우 엄격한 규칙적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몸이 그것을 기억합니다. 영성이라고 하니 손에 잡힐 듯 안잡힙니다. 상관 없어보이는 말이지만, 호감은 어떻습니까? 호감은 영성 안에 포함된다고 생각됩니다. 좋아하는 마음이잖아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도, 변화하여 빛나셨을 때도 하나님은 “내가 그를 좋아한다"면서 호감을 드러내셨습니다.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60일 생활수련’이라는 영적 지도를 경험한 적 있습니다. 십수년이 지났지만, 몸에 배인 습관이 여전히 있습니다. 기간은 다르지만, 사순절 40일도 수련하기에 참 좋은 시간입니다. 올 해 사순절의 주제는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십시오"입니다. 평화롭지 못한 관계가 있습니까? 가족과 친지, 친구와 동료를 돌아보며 기도해 주십시오. 몸의 기억이 서서히 변화되어, 빛되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우리 생애 최대의 화해의 사건이 벌어지길 기대합니다. 호감은 덤으로 주어질 겁니다.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한국 드라마가 인기입니다. 그 중 인기 만점은 인민군 리정혁 대위입니다. 주인공 역할을 맡은 현빈이 참 잘생겨서 그럴수도 있지만 거짓이 없는 그 삶의 순박함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난 수십년간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 오면서 어느덧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뭔가 잃어버린 순수함 같은게 알게 모르게 있는 듯 한데, 그것을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드라마에서 발견하면서 자아를 회복하는 느낌입니다. 사실 체제가 다른 북한 사람들을 보고 마음이 동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북한은 대한민국 사람들에겐 아픈 손가락이고, 세계 주요국들 입장에서는 테러리스트처럼 간주됩니다. 그러나 사상을 넘어,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관통하는 맥이 있습니다. 그것은 삶입니다. 그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느냐보다, 그 삶이 얼마나 진솔하냐가 매력 포인트입니다. 대한민국이 발전을 해오면서 늘어난 게 있습니다. 사기와 과장입니다. 경험해 보신 분이 거의 없으시겠지만, 한국에서는 휴대폰 하나만 사려고 해도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별의 별 조건이 다 붙어서 비싼 요금을 내야 합니다. 진실이 사라진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신앙인도 엇비슷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살라고 했는데, 그리스도인이 되면 얼마나 유익한지, 예수 믿으면 돈잘벌고, 자식 잘되고, 건강 회복된다는 마케팅에 관심을 갖거나, 예수 천당 불신 지옥에 목숨걸고 평생을 다바쳐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지침서인 성경은 어디가 어떻게 기가막히게 연결되니까 신기하다든지 이런 지엽적인 것에 목매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마치 구구단의 원리를 갓 이해한 어린이와 같습니다. 신앙은 묵묵히 삶으로 하나님께 드리면서 배우는 겁니다. 그런데, 신앙의 편법, 쉬운 길, 기독교식 구구단을 발견하려고 애를 쓰고, 그러다 보면 신천지 같은 이단들에겐 좋은 먹잇감이 됩니다. 비즈니스 하는 분들은 구구단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날 가게 문 열고 닫는 소리만 들어도 매출이 작년에 비해 얼마가 늘었고 줄었는지 아는 사람들에게 구구단 잘 외는 법은 심드렁합니다. 하물며 대기업이나 국가는 어떻겠습니까? 쉬운 길, 빠른 길 찾다가 남과 북이 서로 얼마나 달라습니까? 이제 선진국인 우리는 뒤를 돌아볼 때도 됐습니다. 성찰하는 그리스도인, 모든 악의 모양이라도 버리려고 애쓸 때입니다. 세상이 둘로 나뉘어 자유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싸우던 냉전 시대를 기억합니다. 그 시절을 겪었던 지성들은 여전히 진보나 보수 같은 시대가 남긴 상처를 부여잡고 살아갑니다. 비단 당대의 아픔만은 아닙니다. “난 정치에 관심이 없어”라고 말하더라도 얼마든지 우리 모두의 기억이자 생채기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은 더 혼란스러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미디어에서는 트럼프의 악수 거부와 펠로시 하원의장의 연설문 찢기가 뜨거운 이슈입니다. 흑과 백, 악마와 천사로 나누는 이분법이 여전히 다수의 공감 혹은 공분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이렇게 둘로 나누어지지는 않는 게 우리가 피부로 접하는 현실입니다. 부잣집과 가난한 집을 배경으로 하는 한국 영화 “기생충”이 바로 이런 복잡한 현실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야 말로 아는대로 보이는, 귀 있는 자가 들리고, 보는 눈 있는 자가 발견할 수 있는 일종의 “코드”가 숨겨져 있어서 영화계를 술렁이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 아카데미 시상식에 눈길이 가는 이유입니다. 요즘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는 선악이 불분명해서 독자나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 누군가는 이 복잡한 현상을 한 문장으로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사상은 악이 아니라 정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악에는 죄책감이 따라오지만, 정의에는 그게 없어 적절한 제어 수단이 없다는 이유입니다. 내 생각이 올바르다고 해서 얼마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혔을지 돌아봅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곳곳에서 평화의 구호가 피어오르고, 천재지변이 나면 곳곳에서 인명구호를 위해 속속들이 모여드는게 인지상정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거꾸로 보자면, 오늘날 옳음(혹은 올바름)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것은 뭔가 잘못되어가는 현실을 반영합니다. 결국 가지는 못했지만, 인도로 여행을 준비한 적이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여행자가 지켜야 할 수칙 중 한 가지는 죽 늘어선 거지들에게 동냥을 해선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또한 경험 많은 한 여행자의 올바름에 대한 해석입니다. 올바름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반영합니다. 누군가는 기꺼이 1달러를 홈리스에게 줄 것이고, 누군가는 1달러 대신 위생용품을 주되,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힘을 모아 노숙자 센터에 지원을 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노숙자 자활을 위해 입법하는데 힘을 쓰지만, 창을 열고 1달러를 주진 않기로 마음먹기도 할 것입니다. 누구나 특정 올바름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잡하고 불분명한 시대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기준은 어디에 있습니까? 담임목사 취임사 2020년 1월 19일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먼 길 마다하지 않으시고 원근각처에서 방문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께서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제일한인교회 목사가 된다는 것은 대단히 복된 일입니다. 저는 이렇게 신학적으로 훈련받고, 고고히 교단의 신앙의 유산을 지켜나가는 교회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공동체를 통해 목사들이 벗겨내기 힘든 권위주의를 들어내고, 오직 본질에, 복음중의 복음인 사랑에 감화받는 공동체입니다. 기왕 내친김에 우리 교회 자랑좀 하겠습니다. 우리교회는 가죽으로 된 가방같은 공동체입니다. 오래오래 길들여가면서 써도 점점 부드러워지고, 애착이 가고, 멋스러운 공동체입니다. 아직 신앙의 공동체를 정하지 않으신 분들은 오신 김에 등록하고 가시기 바랍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말한 세상 부질없는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목마름 없이 마시는 것, 즐거움 없이 공부하는 것, 마음 없이 기도하는 것,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맞습니다. 사랑 없이 목회하는 것, 이웃에 대한 환대 없이 그리스도인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질없이 살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부질없이 사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증인되신 여러분들을 모시고 말씀드립니다. 제가 고백하는 목회는 무엇보다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인생 살겠습니다. 취임식을 앞두고 기도하면서 제 마음에 그려진 이미지는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시던 주님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늘문이 열리고, 성령님이 임하시며,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를 좋아한다. 이러한 은혜가 거룩한 교회의 사역을 위임받은 저의 목회 가운데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보다 겸손하고, 때를 알고, 성령 충만한 목회자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My dear and respected members of First Korean Church, and you who have attended as witnesses. I'm not enough, but thank you for watching over a year and holding a feast. Today, the First Korean Church is writing a new history. I have a dream! People of faith will be changed from the outside to the inside, and we will open a new era of hospitality for the local and the world. The beginning may look weak, but later it will be great. Please be on this road. I will do my job in grace of God. Thank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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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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