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의 K 프리랜서는 어느 날 자기 아내가 갑자기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렸다. 아내의 친구가 항암치료 때문에 삭발한 다음 창피해서 외출을 못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자‘머리 깎은 한 사람은 쳐다보지만 두 사람은 안 쳐다본다’며 자신도 긴 머리카락을 친구처럼 빡빡 깎아버린 것이다. 그 뒤로 시장이든 백화점이든 늘 함께 다녔다. 비구니가 되는 줄 알고 매일 좌불안석이었던 K 프리랜서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50대 중반의 중견 출판사 H 대표는 어느 날 골목에서 남루한 행색의 ‘걸인’ 같은 사내를 보고 지폐를 꺼내 적선하려다가 멈칫했다. 돈을 불쑥 내미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사내의 등을 향해 말했다. "아저씨, 이거 흘리고 가셨어요.“ 바닥에 떨어진 돈을 주워 주인에게 돌려주는 척하며 적선했다. 마치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한 장면처럼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이 따뜻한 일화는 우리 주변에 흔할 것 같으면서도 흔하지 않은 얘기들이다. 암투병중인 친구를 위해 같이 삭발했다는 얘기를 아직 들어본 적 없고 적선은 하되 ‘걸인’을 돈의 주인으로 만들어 명분을 세워주고 자존심을 배려하는 방법까지 고민했다는 얘기를 아직 들어본 적 없다. 요즘처럼 ‘공감’과 ‘배려’가 크게 강조되는 시대도 드물다. 그러나 대부분 먼발치에서 잠시 눈물짓고 잠시 슬퍼하는 것으로 공감과 배려를 ‘소비’해 버린다. 공감과 배려는 브랜드가 아니다. 소비도 아니다. 값싼 동정은 더욱 아니다. 그것은 작은 감동의 생산이고 그 생산이 모여 감동의 연대를 이룬다. 암투병 환자는 삭발한 친구 하나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나았을 것이고 ‘걸인’은 일부러 자신의 ‘떨어진 자존감’을 세워주는 것 하나만으로도 긴 터널 같은 일상에 잠시나마 빛 같은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가슴에 화상을 입는 것은 영화 속의 거창한 영웅담이 아니라 이처럼 숨어있는 꽃들의 작은 감동들 때문이다. 이들의 인품과 마음이 진짜 생산적인 공감과 배려의 씨앗이다. 그 씨앗이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거둔다. 그리고 다시 봄이 온다. -이산하(시인) コメントの受け付けは終了し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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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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