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봄이 오는 소리 들리시지요? 자연 만물이 만들어내는 봄의 교향곡이 추웠다 더웠다 하면서 왼발 오른발 춤을 추며 우리에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제 시선을 사로잡은 녀석이 있습니다. 우리 아파트 발코니 앞에 말 그대로 한 뼘, 책 한권 들어갈 만한 빈 공간에 피어난 노란 튤립입니다.
작년에 교인분들께 집집마다 봄 향기를 나눠드리고 싶어서 튤립 모종 한 그루씩 배달해드리고 남은 녀석을 화분에 심을 수 없어서 아파트 잔디 한 구석에 심었습니다. 작년에 심자마자 바로 다람쥐 녀석들이 다 꽃을 꺾었어요. 낙심했습니다.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일이니까요. 다람쥐들이 자신들보다 귀여운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무언의 항변을 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기대치 못했는데 올 해 세 송이가 다시 피어났습니다. 부활절 아침에 불쑥 피어난 튤립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부활절 저녁에 돌아와 보니 보라색 튤립 한 송이는 그새 꺽였습니다. 바닥에 덩그라니 떨어져 있어요. 그렇지만 노란색은 아직까지 살아 있습니다. 왠지 저도 오기가 발동돼서 아침 저녁으로 노란 꽃을 보며 묵상을 합니다. 내가 시퍼렇게 지켜보고 있으니 다람쥐들은 꿈도 꾸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거죠. 그렇게 봄은 절반쯤 가고 어느새 5월이 되었습니다. 봄의 교향곡이 울려퍼지고 있는데 저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집착을 하고 있는 거죠. 선물처럼 불쑥 피어난 것에 그냥 왔다 그냥 가는 두 송이 꽃에 마음을 뺏기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이 말씀을 묵상하던 어느날 아침 초연하게 전체 교향곡을 들을 수 가 없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2022년 봄이라는 시즌을 살아가면서 봄의 교향곡을 놓치고, 튤립에만 집착하는 제 모습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처음이라 농사도 원예도 전전긍긍합니다. 좀 지나면 낫겠지요. 인생의 선배 되시는 교우님들처럼 초연한 봄날을 맞이하길 기대해 봅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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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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