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기도 |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오늘자 온라인 예배에서 채택한 공동기도입니다. 이해인 수녀의 가을의 기도와 자웅을 이루는 우리말로 된 아름다운 싯구지요. 가을은 풍성합니다. 열매맺는 계절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생기가 저무는 시기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죽음을 향해 가는 시간입니다. 어느새 우리는 양과 음의 조화로움보다는 활기차고 밝은 쪽을 선한 것으로 여기는 흑백논리와 역사가 선으로 이루어졌다는 선형적 종말론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은 직접 창조하신 모든 색을 아름답게 보시고, 낮의 찬란함과 어둠의 고요함이 가진 아름다움을 함께 나눌 벗을 찾고 계시진 않을까요? 만물의 부활과 순환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작동 방식을 슬며시 비치시는 가을입니다. 이 가을엔 기도와 사랑, 그리고 홀로 있음으로 가득 채워지는 ‘내면의 부활’을 맛보시길 빕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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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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