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유례없는 환난이 찾아왔습니다. 내 이웃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니 더 현실로 와 닿습니다. 모이기에 힘써야 할 믿는 자들의 공동체도 예외는 아닙니다. 사실은 우리가 잊었던 게 있습니다. 모이기에 힘쓰고, 흩어지기에도 힘써야 할진대, 흩어지는데는 그간 소홀했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드리는 가정예배는 흩어지는 교회의 모형입니다. 예배의 주체가 되어서 드리는 예배, 단독자로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예배의 주인공이 되어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예배를 온라인으로 제공합니다. 우리 교회만으로는 준비하는데 힘에 부칩니다. 우드릿지교회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힘을 합쳐서 예배드리기로 했습니다. 평소 연합예배보다 한국어를 틈틈히 사용하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 계획했던 하늘뜻펴기 Lent Series는 칼럼으로 대신하려 합니다. 신앙의 성숙에 이르는 사순절이 되는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문제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 실존적인 기도와 묵상이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이끌 것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배신입니다. 마지막 일주일의 클라이막스로 향하는 수요일 저녁, 갸룟 유다는 은 30양에 예수를 배신합니다. 사랑의 반댓말은 미움이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워한다는 건 사랑할게 아직 남았다는 뜻이니까요.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정지된 오늘, 그간의 무관심을 털어버리고, 비로소 사랑의 증거자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유다는 사실 제자들 중 핵심이었을 것입니다. 돈 맡은 자였으니까요. 그만큼 책임감도 강했을 것입니다. 그의 책임감은 나중에 자살로 이어질 만큼 막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 순간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예수 공동체에 회의를 느끼게 된 터닝 포인트는 아마도 마리아 향유 사건일 것입니다. 자신은 사실 향유를 낭비할 정도로 여유가 없었습니다. 빨리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했으니까요. 프레임 이론이라는 게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관에 맞춰서 세상을 보는 방식입니다. 프레임이 전혀 없으면 줏대없는 사람이겠지만, 너무 매사에 적용해도 피곤합니다. 유기적으로 요령껏 사용해야 합니다. 언젠가 주님도 내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배신할 지 모르니까요, 유다처럼. 지금은 잠시 멈추고, 내 프레임으로부터도 “거리 두기”를 해야 할 시간입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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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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