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라는 한국의 오래된 음악 그룹이 있습니다. 히트곡 '사랑으로'라는 노래가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밖에도 수많은 명곡이 있지만, 왠일인지 지난 주간에 ‘모두가 사랑이에요’ 라는 노래 가사가 제 입술에 맴돌았습니다.
참고로, 해마다 마지막 날 즈음이면 한 해를 돌아보며 호흡을 깊게 하고, 일단 정지해 봅니다. 몸도 정지해 보고, 스케줄도 정지해 봅니다. 그 중에서 판단을 중지해 본다는 의미로 ‘에포케’ (epoché)라는 기법도 사용해 봅니다. 무조건적인 동의를 보류 (withholding of assent) 해 보면, 생각을 맑게 하는데 제법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고요함을 누리고 있을 때, 제 마음에서는 어떤 연유로 찬송가도 아닌 흘러간 유행가 가사가 흘러나왔을지 궁금했습니다. 뉴욕에 가족여행을 다녀와서 기분이 좋았던 탓이었을까요? 크리스마스 때 만난 반가운 얼굴들과, 교우님들과 나눈 따스한 사랑도 적잖이 한 몫 했을겁니다. 사실 '판단 중지'를 해 보기 전까지 신년 목회 방향을 가지고 씨름을 한참 하고 있었습니다. 공동체 성서읽기와 말씀사역으로 코로나 시절을 잘 견뎌낼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과 더불어 이제는 교회가 ‘하느님의 선교 동역자로서의 교회'라는 본질에 걸맞게 하나 둘 업데이트 되어야 할 때라고 방향을 잡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모두가 사랑이라는 고백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모두가 사랑이라는 뜻은 참 좋은데 과연 어떤 배경인지 가사를 찾아보고 그 심오함에 무릎을 탁 쳤습니다. 첫 가사는 ‘모두가 이별이에요'였습니다. 이별을 해 보고서야 온 세상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은 특별한 경험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별의 어둠을 통과해 본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사랑은 질척질척함이 아니라 단호한 이별 이후에 찾아오는 순전한 감정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이별할 것이 있나봅니다. 과거의 것, 썩어질 것은 2022년에 두고 순전하게 새해를 맞이합시다. 새해엔 다른건 몰라도 우선 사랑합시다. 댓글이 닫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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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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