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이 드문 숲 길을 걷다가 둥굴래 잎을 발견한 적 있습니다. 보슬비가 내린 참에 맨 손으로 조심스레 캐보니 새끼 손가락만한 뿌리가 제 몸을 내주었습니다. 고이 집에 가져 와서 차를 끓였을 때 그 깔끔하고 깊은 느낌은 지금까지 여운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때 그 자리로 돌아간 듯한 강렬한 느낌을 주는 것은 맛입니다. 군산 사람인 저에게 정작 기억에 남는 맛은 부산 자갈치 시장의 회맛입니다. 여행 때 맛봤으니까요. 회를 먹을 때면 96년 여름, 태양이 작렬하던 부산의 바다 향기가 스칩니다. 이렇게 여행과 음식은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한국 문화만의 독특한 인사가 "진지 드셨습니까?", "식사 자리 한 번 마련합시다"인 것도 우리가 맛을 아는 민족이라는 증거입니다. 적어도 지금은 만나서 밥먹는 일은 어려워서 이런 인사들이 무색합니다. 맛을 함께 누리지 못하는 현실에 함께 누리는 문화도 층이 한결 얇아지는 느낌입니다. 사실, 한인교회 입장에서 매 주일 모일때 친교의 가치는 거의 예배의 가치에 가깝습니다.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마태11:19)는 못된 비난을 감수하셨던 예수께서 한인교회의 어떤 면을 사랑하실까 상상해 보자면 식탁공동체일거라 생각합니다. 세상 어느나라의 교회도 이렇게까지 애정 넘치고, 정성스럽진 않거든요.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았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출애굽 공동체가 배운 만나의 원리입니다. 이 평등의 원리가 통용되는 자리가 바로 식탁공동체입니다. 만나의 원리를 성실히 지키는 우리 교회는 말씀에 순종하는 공동체입니다. 시편에 보면 성전에 오르는 기쁨을 노래하는 시가 많습니다. 매 주일 아침 일찍부터 몸 단장, 음식 준비로부터 예배를 향한 여행은 시작됩니다. 다만, 음식을 나누는 일이 어려워진 현실인만큼, 예배 안에서의 성도의 교제, 곧 친교가 훨씬 풍부하게 경험되어야 할 것입니다. 서로 악수도 못하는데 어떻게 더 깊은 친교를 경험할까요? 신앙의 층계를 한층 더 올라가는 좋은 질문입니다. 성찬례의 신비에 깊이 참여하여 공동체의 친교를 즐기는 것도 방법입니다. 단순한 만남의 즐거움 대신, 일주일간의 중보기도로 변화된 타인의 일상을 그윽히 바라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결국 예배를 예배답게 드릴 때, 그리스도 안에서 친교는 풍성해집니다. 더불어 우리가 세상의 음식이 되는 것도 친교의 방법입니다. 힘없는 이들을 향한 이해와 연대와 섬김이 질 좋은 재료가 되어 맛있게 한 상 차리는 모습이 성경적 선교입니다. 이렇게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교회의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좋을까요?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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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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