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플러머와 변호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변호사가 <이봐요, 시간당 2백불은 좀 너무한 것 아닙니까? 나는 변호사인데도 그렇게는 못 벌어요>라고 따졌습니다. 플러머가 대답합니다. <나도 변호사였을 땐 그렇게는 못 벌었죠>
플러머, 변호사, 사업가, 성직자 내가 입고 있는 직업의 옷이 무엇이 되든지 그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나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직업은 옷을 갈아입는 것 뿐입니다. 설겆이만 하려고 해도 앞치마를 두르는게 한결 낫듯이, 그 일에 적합한 복장을 갖추는 것 뿐, 그게 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껍데기 안에 있는 속 살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데, 우리가 입고 있는 옷과 타고 다니는 차와 살고 있는 건물이 동원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영화를 잘 보고 눈물을 흘리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나오고 보니까 모두 커플입니다. 순간 쓸쓸합니다. 나만 친구가 없구나. 난 정말 불행하구나.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억지로 불행을 쥐어 짜낼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친구들 집에는 컬러 티비가 있었습니다. 우리집에는 흑백 티비 밖에 없었지만 그 사실이 저를 불행하게 하진 않았습니다. 왜냐면 뭘 몰라서 그랬지요. 어린아이와 같아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이 다른 게 아니지요. 갈등과 원망과 짜증… 모두 어른들의 것입니다. 모두 비교에서 나옵니다. 존재와 자신을 일치시키지 못하는데서 나오는 불행입니다. 들에 핀 백합화나 공중 나는 새에게서 발견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원래부터 감사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세상을 창조하셨고, 기쁨을 충만히 누리는 존재로 만드셨음을 기억하며 범사에 감사합시다. 댓글이 닫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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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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