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새 교회력이 시작되었습니다. 3년마다 돌아오는 교회력에 따라 여러분과 저는 3년짜리 한 바퀴를 함께 돌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대림절은 네 번째 함께 맞이하는 대림절입니다.
대림절은 그리스도의 처음 오심을 기뻐하고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해마다 그랬듯이 두 가지 습관을 들여 한 마음으로 움직이면 좋겠습니다. 첫째 습관은 집에서 좋은 음악을 듣는 것입니다. 어떤 음악이라도 좋습니다. 캐롤도 좋고, 클래식도 좋고, 찬송가도 좋습니다. 다만 마음을 주님께 드높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둘째 습관은 매일 10분간 촛불을 켜고 주님의 오심을 고대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매 주 반복할 기도는 그때 마다 제공하겠습니다. 이번 주간에는 “이 촛불을 희망의 상징으로 밝힙니다. 어둠을 밝히신 빛으로 저희가 구원의 길을 보게 하소서"입니다. 촛불을 켜자마자 이 기도를 세 번씩 반복하며 묵상으로 기도합니다. 촛불을 바라보면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을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이번 해에는 특별히 현장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관계로 한 가지 미션을 더 부탁드립니다. 해마다 어른들과 어린아이들이 함께 초를 밝혀 왔는데 이번에는 여러분이 각자의 집에서 초를 밝혀 주십시오. 보라색 세 개, 분홍색 하나, 흰색 하나 이렇게 초를 색깔별로 준비해 주세요. 어려우시면 같은 색깔도 좋습니다. 대단한 것 같아도 해 보면 별 일 아니고, 이미 하고 계신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또 별일 아닌 것 같아도 해 보면 마음이 차오르고, 기도가 절로 나올 것입니다. 꼭 해 보십시오. 코로나로 인해 예배의 영역이 넓어졌고, 그 곳은 바로 여러분의 집입니다. 요즘 집을 사는 사람들은 Zoom Room이 있는지 물어본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집에는 Worship Room이 있으십니까? 오늘은 교회력의 마지막 날입니다. 교회력의 신년을 앞두고 있는 섣달 그믐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정성껏 준비해 온 수정과와 곶감을 나누며, 두터운 이불을 함께 둘러 덮고 이야기 꽃을 피웠더라면 얼마나 정겨울까 상상해 봅니다.
대림절부터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을 거쳐 성령강림 주간들을 보내노라면 그 결말엔, 한 해동안 부어주신 은혜를 돌아보게 됩니다. 몇 해 전, 일상의 순간 속에서 감사의 제목을 함께 나누던 감사일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일이 떠오르네요. 그런데, 올 해는 얼핏 돌아보면 긴장만 잔뜩 한채 뭘 감사해야 할지 모른 채 한 해를 보낸 것 같습니다. 2020년은 잔혹한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다만 폐허 위에 피어오른 꽃 한송이들이 서로의 가슴에서 피어올라, 전에 경험해 본 적 없는 새로운 믿음의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겠지요. 우리가 만든 달력에 맞추어 애써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쥐어짜낸 감사라도 하나님께 숙제 내듯이 제출할 필요는 없는 거지요. 누군가 뉴욕은 난리가 났는데, 로드아일랜드는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고백한다면, 옆 교회는 감염자가 발생했는데, 우리 교회는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고백한다면, 그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입니까? 저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구나, ~겠지, ~해서 감사하다.”로 돌아가는 일을 이해합니다. 문 하나가 닫히면 아홉개의 문이 열리는 축복의 경험이 가슴에 각인되었습니다. 교회의 운전대를 하나님께 맡겨드렸더니 저절로 가는 자율주행의 축복을 경험케 하심에 감사합니다. 원래 그리스도인은 이름 없는 존재(I am who I am)에 몸을 맡겨 형용할 수 없는 나라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잠시 불확실함에 세상은 당황하지만, 우리는 확실함을 뒤로 하고 불확실함에 뛰어든 사람들입니다. 그 길을 걷다 만난 감격은 모두 언어의 한계 너머의 감사입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다음에 그때는 이 지구에 내려오셔서 사람들하고 같이 사셨다는 것이예요. 그런데 도무지 하나님이 잠을 주무실수 없었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을 늘어서서 컴플레인을 했기 때문입니다. 불평불만 뿐만 아니라 이래라 저래라 보통 피곤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카운슬러를 찾아가셨대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좀 잠을 잘 수가 있겠냐?” 그랬더니 한 사람이 “저기 히말랴야 산속을 산으로 올라가십시요.” 해결책을 내놨습니다. 그런데 몇 천년 지나지 않아 인간들이 히말라야를 정복해 버리고 말았어요. 다른 카운슬러를 찾아갔더니 “달에 가셔서 쉬시면 괜찮을 겁니다"라는 해결책을 내놨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들이 달까지 정복해 버렸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와서 하는 얘기가 내가 기가막힌 아이디어가 있읍니다. 하나님이 편히 쉬실수가 있는 데가 있는데, 그게 바로 사람 속입니다. 사람 몸 안에 숨어계시면은 아마 백만 명 중에 하나가 속을 뒤질테고, 다 밖으로 밖으로 하니까 편하게 쉬실 수 있습니다 . 걱정하실 게 없는게, 어쩌다 한 사람이 혹 속으로 향해서 하나님이 숨어계신 걸 발견한다면 이미 그때쯤 그 사람은 하나님과 닮아져서 고요하기 때문에 방해하지 않을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끌벅적했던 선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주신 여러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쯤 해서 다시 내 삶을 들여다 봐야겠습니다. 곧 Stay at Home 명령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 집 안에 갇혀서 바깥만 보고 있자면 스스로 집안에 갇힌 신세를 만드는 겁니다. 내면세계로의 여행을 위해 몇 글자 자서전이라도 써보시면 어떨까요? 야구를 즐겨보는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전설적인 요기 베라의 명언입니다. 이번 선거의 결과를 보려면 정말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이 수요일인데 여러분들이 주보를 받아보실 주말에는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선거일을 즈음하여 복잡한 선거 방식과 선출방식, 그리고 연방공휴일이 아님에에 불만을 토로하는 몇 분의 목소리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4년에 한 번이라 지나가면 또 일상으로 복귀하겠지만, 그 대신 열심히 세상을 가꾸어나가려는 이들을 진심을 담아 응원하면 좋겠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투표인원이 참석한 2020년 선거는 일단 마무리되었습니다. 소중한 유권행사에 모두 참여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모두 바쁘신 중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이 나라를 귀히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비단 투표율만 최고가 아닙니다. 미 전역을 휩쓸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확진자 수도 연일 최고를 찍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 해오신 것처럼, 기본에 충실하시고, 공기 전파도 감안하여 마스크 착용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는 투명가림막을 설치했는데, 딱 한 주 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다시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게 되었다며, 스캇목사와 함께 아쉬워했습니다. 그래도 선뜻 교회의 결정에 동의해 주신 교우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백번 양보해도 대면 예배가 훨씬 유익함은 부정할 수 없지요. 얼굴 보고 만나는 것을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만, 세상이 좋아졌을 때, 더 진하게 예배드리는 걸로 약속하면 좋겠습니다. 다만,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분들이 늘 마음에 걸립니다. 펜데믹이 속히 잦아들어, 얼굴 보지 못하는 기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서로 간절함과 사랑으로 중보하며, 가끔씩 전화를 먼저 걸어주십시오. 그리고 인내하십시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요. 매 주 수요일마다 UCC 목회자들 4인방이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매일 성서 읽기와 묵상을 어떻게 나누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 목사님은 교회력 성서일과의 주중 성서 읽기를 따르고 있고, 우드릿지교회는 다락방을 이용합니다.
제 차례가 되어 우리 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헤른후트 형제단의 <말씀 그리고 하루>를 소개시켜 줬더니, 가장 오래됐지만 새로운 제비뽑기 방식에 다들 호기심을 가집니다. 올 해로 290판이니, 아마 가장 오래된 묵상집일 것입니다. 그러더니 스캇 목사가 웃으며 다른 목사들에게 이렇게 저를 소개합니다. “노목사는 인터내셔널 목회자야. 한국에서 제작한 교회학교 멀티미디어 교재를 사용하고, 독일에서 제작한 묵상집을 사용하는데, 일제 카메라로 온라인 예배를 준비하고, 미국에서 목회를 한다니까” 한바탕 웃고나서 생각해 보니, 사실 다들 다를게 없긴 합니다. 모인 사람들 모두 일제차를 타고 다니고, 중국산이 없으면 미국인들은 생활을 할 수가 없고, 베트남제 신발에, 유럽산 신학자들의 주석을 읽으며 설교 준비를 합니다. 두어 달 만나니, 다들 기억력도 좋아서 제가 들려준 한국 이야기들을 묵혀놨다가 질문하기도 합니다. 한국사람들은 왜 다 장로교가 많아? 일본은 왜 개신교 선교가 안됐을까? 이 자리에서만큼은 제가 한국 국가대표입니다. 민족의 수난사와 절박했던 시절 꿀송이보다 단 복음을 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의 성향을 알려주고, 왠만한 신학자 수준의 성도들의 생활신앙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비공식 아시아 국가대표네요. 이야기 보따리가 끝이 없습니다. 흑사병을 피해 피렌체 교외로 피난 나와 스스로 격리한 이들의 이야기가 데카메론이라면, 코로나로 피어난 이야기 꽃은 신데카메론일까요? 여러분의 데카메론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
아카이브
4월 2023
카테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