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주간 도서관 왔다갔다 하는 길에 조금씩 페인트를 벗기고 있는 집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페인트를 저런 속도로 벗기다가는 여름 지나서 페인트 칠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그럴 계획이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면서 페인트 벗기는 일의 고단함을 묵상해 봤습니다. 페인트를 칠하려면 오래된 페인트를 먼저 벗겨야 됩니다. 쉽게 벗겨지는 화학 약품이 있기는 한데, 그래도 Sand Paper로 마무리를 해야 깔끔하게 준비가 되는 법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새롭게 은혜를 덧입히려면, 그 이전에 기존에 갖고 있던 두어 가지 오해들을 깨끗이 벗겨내야 합니다. 첫 번째 오해는 부활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만한 웅장한 스케일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신문이 만일 있었다면 1면이 아니라 사회면에 작은 기사로 나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은 부활신앙의 렌즈로 모든 일을 묶어서 바라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매일 같은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지나가던 소식이었습니다. 다만 소수의 사람들의 눈과 귀와 가슴을 의심스럽게 만들어 놓고서, 그들이 다시는 흔들릴 수 없는 변화를 경험한 은밀한 사건이 부활이었습니다. 두 번째 오해는 부활이 사람들의 수명에 어떤 변화도 주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도 도마도 마리아도 수명을 마치고 천국으로 향했습니다. 다시 부활한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낡은 페인트를 벗기면 뽀얀 원목이 나오듯이, 진짜 부활은 산뜻하다기보다, 약간 심심한 느낌입니다. 그 심심함은 고급 파인 다이닝의 정갈한 음식의 심심함과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참된 부활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을 이해하는 것보다 예수님이 더 바라시는 것은 부활의 의미를 신앙으로 체화시켜 살아가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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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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