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에
동행하신 여러분들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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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봉독 | 전도서 Ecclesiastes 7장 | 공동번역
13 하느님께서 이루어놓으신 것을 보아라. 하느님께서 구부려놓으신 것을 펼 사람이 어디 있는가? 14 일이 잘되거든 행복을 누려라. 일이 틀려가거든 이 모든 것이 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인 줄 알아라. 아무도 한 치 앞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아라. 23 나는 지혜를 다 짜내어 이 모든 것을 알아보려고 했다. 나는 스스로 지혜있는 자이거니 생각했는데 어림도 없었다. 24 나로서는 세상만사 알 길이 없었다. 깊고 또 깊은 그것을 그 누가 알겠는가? 29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깨달았다. 하느님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드셨는데 사람들은 공연히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하늘뜻펴기 | 노용환 목사 | 내면의 단순함으로 세상이 크리스마스 새벽같이 고요합니다. 집집마다 드라이브 웨이에 차들이 꽉꽉 들어차 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안갑니다. 지구 전체가 들썩거리며 비상시국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의 입은 하루 종일 쉬지 않습니다. 말을 쉴때는 먹을 때 뿐입니다. 요즘 네 살 막내가 자주 하는 말은 "왜냐하면"입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그거… 나 몰라"를 연발하던 막내가 어느새 한/영, 이중 언어로 설명해 주는 선생님이 됐습니다. 이제 곧 어른들이 모르는 자기들만의 말을 배우겠죠? 집을 떠날 때쯤 되면, 어른들은 모르는 2040년 즈음의 첨단기술 용어를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나... 골똘히 생각할 겁니다. 사람은 자라면서 점점 복잡한 사유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체스선수나 바둑 기사, 혹은 야구단 감독이나 장교, 의사, 비즈니스맨처럼 몇 수 앞까지 내다보는게 직업이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현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 즉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잠시 멈춰서서 전향적으로 묵상해 봅니다. 전도서 7장 29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깨달았다. 하느님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드셨는데 사람들은 공연히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공동번역)". 지극히 단순한 어린 아이는 누구에게나 눈길을 받고, 누구에게나 사랑의 마음이 싹트게 합니다. 말을 배우면서 미운 일곱살 같은 소리를 듣기도 하다가, 결국 아인쉬타인의 경지에 이르르는 복잡한 생각을 해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총명함이 사랑을 얻어내진 못합니다. 이렇게 복잡한 사유로 만든 세상을 문명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문명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결국 모두의 삶이 하루아침에 단순해졌습니다. 인간 내면의 단순함이라는 원형에의 귀의를 추구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하게 만드셨는데, 사람은 기술을 익히고, 지혜가 더해져 자꾸 탑을 쌓습니다. 헛되고 헛되다는 전도서 기자의 고백이 오늘 한치 앞도 보지 못했던 우리 인류의 수동적 단순함 앞에서 새 울림이 됩니다. 우리의 미래, 우리의 새로운 삶의 양식은 분명히 하나님께 더 향하는 방향으로 향할 것입니다. 성서 봉독 |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2:21-27 | 21 눈이 손더러 "너는 나에게 소용이 없다" 고 말할 수도 없고 머리가 발더러 "너는 나에게 소용이 없다" 고 말할 수도 없읍니다. 22 그뿐만 아니라 몸 가운데서 다른 것들보다 약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23 우리는 몸 가운데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부분을 더욱 조심스럽게 감싸고 또 보기 흉한 부분을 더 보기 좋게 꾸밉니다. 24 그러나 보기 좋은 지체들에게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읍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도 변변치 못한 부분을 더 귀중하게 여겨 주셔서 몸의 조화를 이루게 해 주셨읍니다. 25 이것은 몸 안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모든 지체가 서로 도와 나가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26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아파하지 않겠읍니까? 또 한 지체가 영광스럽게 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기뻐하지 않겠읍니까? 27여러분은 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지체가 되어 있읍니다. 하늘뜻 펴기 | 함께 기뻐함으로 Joyful together | Rev. Scott & Rev. Noh 노용환 목사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비상이 걸렸습니다. 교회들도 문을 닫았고, 우리는 가정예배와 온라인예배를 병행하여 드리고 있습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드리던 예배와 동일한 은혜가 각 가정가운데 있기를 소망합니다. 교우님들께 전화를 드려보니, 다행히 대부분 집에 머물러 계십니다. 답답하기도 하실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요즘 "자발적 격리"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건강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사람이 돼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 잘 해서는 안되며, 모두 협조해야 가능한 예방 정책입니다. 성서 본문 | 마태 Matthew 22:17-21 |
17 그러니 선생님의 생각은 어떤지 말씀하여 주십시오.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18 예수께서 그들의 간악한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위선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세금으로 내는 돈을 나에게 보여 달라." 그들은 데나리온 한 닢을 예수께 가져다 드렸다. 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이 초상은 누구의 것이며, 적힌 글자는 누구를 가리키느냐?" 21그들이 대답하였다. "황제의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 하늘뜻펴기 | 하나님께 드림으로 | 노용환 목사 세계교회협의회 의장을 역임했던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처음 그들이 왔을 때>를 한 분이 읽고 묵상해 봅니다. 처음에 그들이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들이 가톨릭교도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가톨릭교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후 그들이 나를 덮쳤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현대인들은 바쁜 사람들입니다. 너무 갈길이 멀어서, 시간이 없어서, 할 일이 많아서. 나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이 없으면 나하고 상관 없는 일로 치부해야 합니다. 바쁘니까요. 처음 중국에서 바이러스가 발생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한국에서 난리가 났을 때도 고작 가까운 가족친지를 염려했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시급히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미국인 중 2억명이 바이러스에 걸리고, 170만명이 사망한다는 통계 결과도 나왔습니다. 다행히 위정자들의 전향적인 결정이 나와서 시민들의 목숨을 상당수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되짚어 보니 비슷한 경고는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신종플루, 사스, 메르스... 모두 강건너 불구경이었습니다. 나하고 상관 없는 일이니까요. 정작 일이 터지고 나니, 우리 식구 보호할 마스크도 없고, 위생용품을 구할 수 없습니다. 한 주 전까지만 해도 전화기로 뉴스나 보며 ‘갑론을박’하던 관람객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제는 검투사가 돼서 굶주린 바이러스와 대결을 펼쳐야 합니다. 오래전 예루살렘 성전에서 갑론을박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평범한 백성들에 비해 비교적 안전했습니다. 기득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같은 금액을 내야 하는 세금은 이들이 가진 재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높은 자리에서, 곱게 차려 입고, 성문 어귀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백성들이 뭘 잘못하는지 찾아내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또 나랑 생각이 다른 이들을 혐오하고 싸우는데 인생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를 만납니다. 당대에 내노라하는 논쟁의 대가들이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을 파고선 문제를 맞춰보라고 시험합니다. 바로 로마에 내는 세금이 합당한가?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는 겁니다. 보통의 경우 당황할 겁니다. 세금이 합당하다고 하면 유대인들의 미움을 받게 될 것이고, 세금이 부당하다고 하면 반체제 인사로 현행법을 어기게 될테니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를 꿰뚤어 보십니다. 데나리온 동전에 그려진 그림과 글자를 보이며 되물으십니다. 티베리우스 아우구스투스 로마 황제의 초상과 로마자를 읽고 그들이 직접 사실을 말하게 만드십니다. “황제의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그들과 닮아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외치는 예수 공동체의 쩌렁쩌렁한 임박한 메시지는 이들에겐 소음입니다. 관심이 딴데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이사, 즉 황제의 초상이 그려진 데나리온 은전은 분명히 세상의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상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만 해도 율법적으로 부적절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황제에게 다시 돌려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합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것입니까? 세상 만물입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보면, 하나님 형상닮아 창조된 것입니다.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본 형상을 잊었습니다. 1세기 무려 수십년 이상 없었던 건물이 하나님의 전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 눈 앞에 닥친 것에 우리는 조급해지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예배를 온라인으로, 가정에서 드리는 것에도 개탄하는 이들이 있지만,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생각해 봅시다. 무엇이 하나님의 것입니까? 우리가 진작에 했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하나님께 드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가운데 하늘 뜻을 알아차리고, 각자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회복되는 은혜를 사모하시길 축원합니다. |